90년대 감성 사진 한 장이 게이머들을 혼란에 빠뜨린 사연
'이게 2015년 게임이라고?'
지난 11월 1일, 레딧의 'Tip of My Joystick' 커뮤니티에 한 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게시자는 2000년대 중반에서 2010년대 초반 콘솔 게임으로 추정되는 캐릭터 생성 화면의 정체를 묻고 있었다. 하지만 이 사진을 본 게이머들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댓글(204개 추천)은 이런 내용이었다. "도대체 왜 이 사진이 90년대나 2000년대 초반 같아 보이는 거야? 블러드본은 분명히 2015년에 나왔는데 말이지."
추억 필터의 마술
실제로 여러 게이머들이 해당 스크린샷을 블러드본의 캐릭터 생성 화면으로 확인했다. 한 유저는 "거의 100% 블러드본이 확실하다. 캐릭터 생성 화면을 본 지 좀 됐지만, 이게 그 화면이 맞다"라며 확신했다. 다크 소울 3일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대부분은 블러드본 쪽에 무게를 뒀다.
그런데 정작 이 게시물이 화제가 된 이유는 게임 식별이 아니었다. 사진 자체가 풍기는 묘한 복고 감성 때문이었다. 2015년에 출시된 최신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20년 전 게임처럼 보이는 이 기묘한 현상에 게이머들이 집중한 것이다.
'실패한 어른'이라는 자조적 밈
일부 유저들은 처음에 이를 크리피파스타(인터넷 괴담) 관련 콘텐츠로 오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밈이었다. 해당 이미지에는 "희귀한 미학: 당신은 유치한 관심사와 취미를 가진 실패한 어른으로, 꿈 속에서 살고 있다"라는 텍스트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게임을 즐기는 성인들의 자조적인 유머를 담은 밈으로, 특히 소울 시리즈나 블러드본 같은 하드코어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게임에 빠져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스스로 패러디한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시간 감각 왜곡
이번 사건은 현대 게이머들이 겪는 흥미로운 현상을 보여준다. 디지털 이미지의 화질이나 촬영 방식에 따라 실제보다 훨씬 오래된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 감각 왜곡' 현상이다. 특히 CRT 모니터나 브라운관 TV의 화질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들은 자동으로 '과거'의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블러드본이 출시된 2015년은 이미 풀HD가 표준이었던 시대다. 하지만 특정한 촬영 조건이나 압축 과정을 거치면서, 마치 10~20년 전 게임처럼 보이는 착시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게이머들의 집단 기억
레딧 유저들의 반응은 게이머 커뮤니티의 집단 기억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보여준다. 많은 이들이 블러드본의 캐릭터 생성 화면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그 기억이 시각적 착각에 의해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게임이라는 매체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어떻게 저장되고 재생되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사례가 된다. 특히 소울 시리즈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게임들은 시간이 지나도 선명하게 기억되지만, 그 기억마저도 외부 요인에 의해 왜곡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11월의 이 작은 해프닝은 현대 게이머들의 집단 무의식과 디지털 시대의 시간 감각에 대해 생각해볼 거리를 제공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게임을 사랑하는 '실패한 어른들'의 유쾌한 자조적 유머를 엿볼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Comment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