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TRPG 만들면 게임 디자이너? 게이머들 '발칵' 뒤집어져

AI로 TRPG 만들면 게임 디자이너? 게이머들 '발칵' 뒤집어져

'새 게임 배우기 싫어서 AI가 만들어줄래요'

지난 8월 12일 레딧 RPG 커뮤니티에서 황당한 사연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한 게임마스터(GM)가 "새로운 게임 시스템을 배우기 어려워서 AI에게 게임을 만들어달라고 했다"며 플레이어를 모집한다는 내용이다.

사연의 주인공은 "전통적 판타지 요소와 사이버펀크가 결합된 세계관"이라는 흥미로운 설정으로 플레이어를 모집했다. 한 유저가 왜 기존의 '사이버펀크' 시리즈나 '섀도우런' 같은 검증된 시스템을 쓰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그의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그건 너무 번거로워요. 책도 읽어야 하고, 게임 돌리는 법도 배워야 하고, 설정도 다 외워야 하잖아요. 차라리 ChatGPT한테 게임 만들어달라고 하는 게 훨씬 쉬워요."

아이러니의 극치, 'AI로 만드는 사이버펀크'

이 발언은 게이머들 사이에서 큰 웃음거리가 됐다. 사이버펀크 장르 자체가 AI와 거대 기업의 폐해를 경고하는 내용인데, 정작 그 게임을 AI로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다.

한 댓글러는 "사이버펀크를 AI로 만든다는 아이러니를 지적했는데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더라"며 "아마 네온사인 말고는 사이버펀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유저는 "메가코프와 사회 문제들이 현실과 전혀 연결점이 없다고 생각하나? 그냥 게임일 뿐이야"라며 빈정거렸다.

'게임 디자인 = AI 프롬프트' 착각

게이머들이 가장 황당해한 부분은 이 GM의 논리였다. "게임 시스템을 직접 디자인하고, 작성하고, 검토하고,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책 한 권 읽는 것"보다 쉽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한 댓글러는 "'TRPG 만들어줘'라고 AI에 타이핑하는 게 게임 디자인이라고? 말이 안 된다"며 분개했다. 게임 디자인 이론을 공부한다는 원글 작성자는 "AI가 게임을 만들어준다고 해서 자신을 게임 디자이너라고 생각한다니, 뭔가 내 안에서 부서지는 기분이었다"고 토로했다.

AI로 캐릭터 만들기의 민망한 현실

댓글에는 비슷한 경험담들이 쏟아졌다. 한 유저는 "우리 테이블에 새로 온 플레이어가 ChatGPT로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하더라"며 사연을 공개했다.

"10분 지나니까 없는 능력을 쓴다고 하고, ChatGPT가 지어낸 '화염 성기사' 같은 존재하지도 않는 서브클래스를 들먹이더라. 알고 보니 캐릭터 생성을 통째로 AI에 맡긴 거였다."

더 민망했던 건 다음 세션이었다. DM이 팰러딘의 맹세에 대해 묻자, 그 플레이어는 단조로운 목소리로 휴대폰을 보며 "지혜를 길잡이 삼아 정의를 실현한다" 같은 AI가 생성한 긴 연설문을 읽어 내려갔다고 한다.

다행히 이 플레이어는 테이블 분위기를 파악하고 AI 의존을 그만뒀지만, 이런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취미까지 로봇에게 맡기는 이유가 뭔가요?'

게이머들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취미 자체가 재미있어야 하는 건데, 왜 그걸 로봇에게 맡기려고 하나"라는 의문이 주를 이뤘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댓글은 조안나 마치예브스카의 명언을 인용한 것이다. "AI가 설거지와 빨래를 해줘서 내가 예술과 글쓰기를 할 수 있게 해주길 원하지, AI가 예술과 글쓰기를 해줘서 내가 설거지와 빨래를 하게 되길 원하는 건 아니다."

한 댓글러는 "너무 바빠서 책을 읽을 수 없으니까 로봇이 책을 써주고 그걸 읽겠다는 소리"라며 "결국 책은 읽어야 하고 규칙도 배워야 하는 건데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홈브루 시스템의 함정

베테랑 게이머들은 "홈브루 게임 시스템"이라는 단어 자체에 경계심을 드러냈다. "대부분의 GM들이 게임 디자인이나 수학적 밸런스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ChatGPT의 한계를 상세히 설명했다. "ChatGPT는 복잡한 자동완성 도구일 뿐"이라며 "기존에 없던 혁신적인 메커니즘을 만들어내지도 못하고, 실제 플레이어들과 플레이테스트를 할 수도 없으며, 일관된 디자인 비전을 유지할 수도 없다"고 단언했다.

결국 도망간 그 GM

원글 작성자가 이런 문제점들을 지적하자, 해당 GM은 "당신은 우리 게임에 참여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아직도 계속 플레이어 모집 광고를 올리고 있더라"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은 AI 기술의 발달과 함께 나타나는 새로운 문제들을 보여준다. 기술은 도구일 뿐인데, 그 도구가 마법처럼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착각이 오히려 본질을 잃게 만드는 역설적 상황이다.

게임은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 상상력을 나누는 소통의 장이다. 그 소통마저 AI에게 맡긴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테이블에 둘러앉는 것일까?

원문 링크: https://reddit.com/r/rpghorrorstories/comments/1moecx6/learning_a_new_game_is_hard_so_im_having_ai_build/